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인문학적 === [[인문학]]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였는데 ([[식민지]] 지역 같은) 야만에서 벗어난 문명국을 자처하던 유럽이 그 어떤 야만인들보다 더 끔찍한 전쟁을 벌였던 것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벨 에포크|급속도로 발전하는 문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낙관하던 분위기]]는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박살이 나고 만다.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자원하던 유럽의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생지옥이었으며 1차 대전 이후로 유럽 문화는 상당 부분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다만 유럽도 모든 면에서 화려하거나 낭만적인 문화가 지속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며, 상흔이 가시면서 다시금 지속된다. 게다가 민간 피해가 없다시피했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경제적 호황과 더불어 한층 더 낭만적인 문화가 지속되었다. 미국에선 프랑스에서 들어온 [[아르데코]] 양식이 발달하고 [[플래퍼]]가 출현하는 등 과시적인 사교 문화가 발달했으며 일본에서는 유럽에 대한 수출량이 늘고 대중국무역 등을 독점하여 나리킨이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이 출현하여 유럽에서 미술품을 긁어모으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분위기도 자유로워져 [[다이쇼 데모크라시]] 같은 민권운동이 발달했다. 이러한 것들 대부분이 [[세계 대공황]]이 터지면서 수그러들긴 했지만 말이다.] '''염전(厭戰)사상''' 확산에도 일조했다. 까놓고 전근대시대 유럽의 전쟁은 이전까지가 그랬듯 특정계급들간의 제한적인 동원으로 이루어진 전쟁이었고, 전쟁의 프로들인 정규군과 용병들로 구성된 전사들의 영웅주의적 색채로 미화되어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시대 프랑스를 시작으로 점점 전쟁을 전문으로 하던 전사계급이 아닌 시민이 총을 들고 나서는 총력전의 개념이 도입된 이후에 각국 역시 열강들끼리 온 국토를 쥐어짠 총력전을 한 것은 처음이라 각국 수반들도 전쟁을 지금보다는 훨씬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전쟁은 이전과 달랐다. 전사들만 싸우는게 아닌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기에 군기확립이나 군인 통제가 어려웠고, 그동안 자신들이 칭하길 야만인이었던 식민지의 저항세력에게 쏟아붓던 제국주의 열강의 필살기였던 기관총과 야포의 총구멍이 자기를 향하게 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자국 시민을 상대 기관총과 야포에 총알받이로 던지는 참담한 전쟁을 마주하기 시작했음에도 정치가들과 높으신 분들은 전쟁을 멈출수 없었고, 피해는 엄청나서 그 이전과는 달리 전쟁을 벌였다가는 잃을 것이, 설사 이긴다고 가정해도 그 이후 따를 보상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1차대전은 거의 모두가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막으려 들지 않았다. 1차대전의 악몽과 피해를 겪고는 2차 대전 직전에 연합국의 일원들이 필사적으로 전쟁을 피하려고 했던 것과 사뭇 대조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가공할 피해는 대전 직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염전 사상을 확대시켰다. 전쟁에 대한 가공할 공포는 열강들에게 더 이상의 1차 대전과 같은 재앙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이 염전 풍조는 유럽 사상 유례없는 [[군비축소]] 조약과 [[부전조약]]을 체결하는 계기가 되었고, [[뮌헨 협정|제2차 세계 대전 직전 영-불의 독일에 대한 소극적, 유화적 외교시책]]의 원인이 되었다. 그 1차 세계 대전때 처절한 참호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2차 세계 대전때 가장 강력한 유권자 세력이 되었고, [[대물림|그들의 자녀들에게 참호전을 시킬지]] 모를 상황이었으니까. 이 염전의 풍조가 지금 생각하면 2차대전이 그 지경으로 가는 데까지 방조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슬픈 아이러니. 당대의 이러한 염전 풍조 확산은 그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1차 대전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La Der des Ders)이었다고 평가하게 하였다. 1914년까지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통치했던 유럽은 미국 등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 의존해 재건에 집중해야 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스스로를 세계 문명의 주축이라 여기고 미래를 낙관했던 유럽 국가들에 전체적인 비관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런 시체의 산을 손쉽게 쌓아올리는 지옥도 같은 전쟁 양상은 이전 과학 기술이 평화로운 풍경 하에 발전하던 시절에 품었던 [[벨 에포크]]적인 과학과 이성으로 가득 찬 희망차고 밝은 미래상의 붕괴를 불러오고 그 [[과학]]이 미치광이 같은 전쟁 상황에 동조하고 도리어 더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을 불러오게 되었다. 반면에 당시의 미흡한 군사 기술에 대한 연구는 어마어마하게 발전하였으며 이후 이어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말의 낙관마저 꺾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